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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수업 (2020)영화 2023. 1. 6. 23:59
스포 ⭕ 헛소리 ⭕
개인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감상이 전부인 관계로 읽기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문제시 내가 또 실수를,,,저기 이름없는 사람들 무리에 껴서 죽으러 갈 셈이야?
저들은 이름이 있어요. 당신들이 알려고 하지 않아서일 뿐이에요.1. 이름
여러모로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저들도 이름이 있어요. 당신들이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영화 중간에, 앉아있는 클라우스 앞으로 명부에 자가 올려진 장면-레쟈가 이름을 단어에 녹여낸 방식이기도 함-이 클로즈업된다.
사실 그 장면을 보면서 '뭐야... 레쟈 걸리는거야?' 하면서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클라우스에겐 그들의 이름이 유의미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읽는지 어떤 모양을 하고있는지 관심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배우던 말들이 거기 쓰여있을 거라고 알아채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레쟈의 명명방식은 처음엔 그저 단순했다. 무슨 '사과는 애플'을 외우듯이, 아무 단어에나 대입하고 막연히 외우던 이름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레쟈는 수많은 주인공들에게 '이름이 뭐에요' 묻고, 의미를 담아 번역한다.
그 사실을 맨 처음 알았을 땐 막연하게 뭔가 의도를 담아서 명명하는구나... 싶었는데, 텅 빈 동공을 가진 이의 이름에 '희망'을 담고 밥 나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는 이에게 '인내심'을 명명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서야 알았다. 레쟈는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보고 있었구나.
2. 질
주인공 레쟈는 유대인의 이름을 응용해 제 3의 언어로 만들어낸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벌인 일이니까 무단도용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 훗날 어둠이 가셨을 때 잊혀질 뻔 했던 그들의 이름을 세상 밖으로 다시 끄집어낸 것도 레쟈다.
2580개의 단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2580개의 단어를 즉석에서 만들어내고 프리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외우는 것부터가 대단한 사람이다.
동시에 어쩌면, 2580개의 단어는 그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보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숨죽여 보냈는지 알게 해 주는 요소일 수도 있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에서야 레쟈의 진짜 이름 '질'을 알았다.
레쟈에게 진짜 이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나는 독일인과 똑같은 사람인가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엔 그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가지고 크레딧에 올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감동이야
3. 클라우스
사실 질이 레쟈로 살았다지만 영화 내내 가장 많이 불린 호칭은 '어이, 페르시아인'이다.
페르시아인인 척 하는 유대인에게 배타적인 독일인들 사이에서 클라우스는 레쟈에 대한 마음을 비교적 빨리, 그리고 많이 내보였다.
레쟈가 그를 '클라우스'라고 부르기 훨씬 전부터 그를 레쟈라고 부르면서 밥도 주고... 심지어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빵과 통조림도 챙겨준다. 같은 독일인 병사에게도 통조림 주기 싫어서 아끼고 아끼던 사람이.
동시에 독일인의 세계에 염증을 느껴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서 그의 마지막 결말에 조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카를루스는 레쟈를 사랑했을까? 제 생각은 Yes여요
'넌 내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라는 대사는 미래 그들의 관계에 대한 복선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레쟈가 자신에게 구라쳤다 생각했을 때 그는 화를 냈지만, 레쟈에게 다른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오히려 상처를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레쟈를 사랑했다고 해서, 그리고 그의 결말이 배신과 심판으로 끝났다고 해서 그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가 애초에 레쟈를 사랑하게 된 것도 레쟈가 유대인이 아닌 페르시아인으로 인식해서니까...
회의감 느끼게 하는 독일인도, 인간취급하지 않는 유대인도 아닌 제 3의 인종이라 마음을 연 거다.
4. 페르시아어
국제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를 배운적 있다
사실 초반엔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지식(한/일)과 하나도 겹치는 게 없어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나가떨어지고 그에 대한 보상(형벌)을 학점으로 받았다.에스페란토어는 그런 개념이다. 아무도 태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이제부터 이 단어를 이렇게 부르자 약속'하며 만들어진 언어.
두 사람이 만들어 낸 페르시아어가 그 언어를 생각나게 했다. 실제 페르시아 인들이 쓰는 말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이렇게 부르자고 약속한 말.
세상에 둘만 아는 언어라는 건 사실 어떻게 보면 꽤나 로맨틱한 말 아닌가, 두 사람이서 새 언어로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들만 아는 말을 주고받는 건 두 사람의 관계성이 얼마나 짙은지를 감히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말이라 ...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더이상 그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졌을 때 클라우스는 자신의 감정을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게 되었다.
5. 유대인
어렸을때 교회에서 복음집회인가 뭔가를 한다고 유대인 수용소의 끔찍한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몰랐던 어릴 땐 그게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몰랐다. 지금은 안다 하... 좀 잊고 싶음
영화는 그때 그 영상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가축 ... 아니 가축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현장. 아무도 그들에게 인권을, 존엄성을 챙겨주지 않는 시대.
마차에 몇십 명의 사람들이 올라타 끌려올라가던 길을 레쟈가 홀로 돌아나오는 엔딩은 그 공간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러닝타임 120분동안 나는 정말 그만 보고 싶었다.
레쟈가 당장이라도 들통날 것 같아서, 잠시 뒤의 비극을 금방이라도 마주할 것 같은 두려움에 감정적으로 상당히 피곤했다. 레쟈가 유대인 틈에 섞여 죽으러 떠날 땐 차라리 그게 아름다운 결말이겠다 싶을 정도로.
그런데 2년동안, 2580개의 단어를 만들 동안을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120분의 감정으로 감히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지더라구
(중간에 심지어 그사람 그래도 좀 뽀둥해진 것 같다고 오해도 함... 마지막 순간까지 배고파하던 사람이었는데)
레쟈가 자코모 대신 죽으러 가기로 결심한 것도 그 이유였겠지?
2년이 넘는 세월동안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자신의 모가지를 노리는 이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찾고 있고...
안 그래도 자기는 비교적 편한 곳에서 감자 뜯어먹고 일할 때 남들은 뭣도 못 얻어먹고 매맞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마음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거기에 자기 때문에 동료가 둘이나 희생되는 상황은 그에게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안겨주었을 거다.
그런 장면을 목도하고 멘탈쓰레기가 되어 돌아온 레쟈에게, 오히려 사랑과 바다와 낭만을 노래하는 클라우스는 더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었을 거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독일인들이 생존권과는 하등 상관없는 성 사랑 자유 뭐 그런걸 찾고 배신때리고 슬퍼하고 화낼 때, 유대인들은 당장의 목숨과 생존과 연대를 걸고 일해야 한다. 두 집단의 욕구 단계부터 이미 불평등한 사회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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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민족이라 불리는 유대인이니만큼, 성경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 형제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형 에서가 당장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아넘겨 팥죽인지 포리지인지를 먹었다.
그리고 동생 야곱은 자신이 형 에서라고 구라를 쳐서 늙은 이삭에게 축복을 받고 도망을 오지게 친 끝에 결국 살아남아 수많은 유대인의 조상이 된다.
영화 또한 그렇다.
유대인 사내가 당장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질에게 페르시아 책을 팔아넘겨 샌드위치 반쪽을 먹었다.
그리고 주인공 레쟈는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구라를 쳐서 늙은 클라우스에게 축복을 받고 도망을 오지게 친 끝에 결국 살아남아 수많은 유대인의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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