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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시그네 (2022)영화 2023. 1. 29. 22:37
스포 ⭕ 헛소리 ⭕
개인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감상이 전부인 관계로 읽기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문제시 내가 또 실수를,,,1. 주인공
주제와는 약간 벗어난 이야기지만, 이 문구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한 대 엊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정말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공부인지 문학인지 미술인지는 그때 그때마다 달라졌긴 한데
별 생각 없이 써 낸(이게중요함) 독서 감상문에 선생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날,
드라마 같은 전개로(이게중요함) 전교 1등이 되던 날,
'나는 생각 없는데'(이게중요함) 굳이 선생님이 특목고 가라고 종용하셨던 날. 그런 날들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한 나머지
나의 가치는 무한하고,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됐다.
그러다 고등학교 내신이 바닥을 기면서,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학과 분위기에 적응 못해 도망치면서, 취업에 실패하면서, 뭐 그런 수많은 전개를 거치며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더라. 세상엔 잘난 사람이 아주 많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렇게 나 자신의 '주제파악'을 해나가는 과정은 제법 쓸쓸하고, 서글프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나의 자의식을 내려놓고 내 주변을 인식해 나가는 과정이다... 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며, 내가 맞다 해도 나는 70억 사람들과 함께 지구라는 무대를 차지하는 공동주연이지 원탑물이 아니란 거
영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세상의 주인공이 내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 관종
주인공 시그네는 관종이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가져주길, 대화의 주제가 항상 자신이길 바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저절로 어른이 될 시기를 그녀는 무사히 이겨내고(?) 언제 어느 순간에서나 관심을 받고자 하는 훌륭한 관종이 됐다.
영화 초반, 얼굴을 닦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피투성이 상태로 퇴근하는 주인공 시그네의 모습은 사실 내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타난 소극적인 관종짓
같은 관종인 입장에서 이야기에 msg를 친다거나, 내게 닥친 사건을 알아달라고 피묻은 얼굴로 퇴근하는 부분에선 오히려 공감마저 갔다.
하지만 그녀의 관종력은 상상 이상인 게, 자신이 주연이 되면 안 되는 자리에서도 주연이 되기 위해 좀 속된말로 나댄다.는 거다
아니 이게 영화 소개글을 잘못 짠 게, 나는 시그네가 그냥 남미*라서 남자친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쇼를 벌이는 줄 알고 갔는데
알고보니 ... 남미*가 아니라 그냥 관종중의 관종이었음 그녀를 감당하기에 남자친구라는 존재는 너무 작을 정도로
오죽하면 남친이랑 자고 있는 말초신경 최고조의 상황에서 자기 장례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주는 상상을 하냐구
인간관계엔 기브앤 테이크가 필수인 만큼 관심에도 티키타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그녀의 세상을 훔쳐보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도 알수가 없다. 예외라면 기자인 친구(스토리 전개에 필수)나 약을 구해다 준 친구(자기가 받을 게 있음) 정도
3. 자극
나이트크롤러를 아십니까. 그 옛날 20년치 볼 영화를 반년에 몰아보던 시절 만난 작품
시그네를 보고 터질 듯한 뒷통수로 터덜터덜 코엑스를 걸어나오면서, 그 영화 생각을 했다.
관심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말로... 이제 한 쪽은 자기를 죽이고 다른 쪽은 타인을 죽이는 게 좀 다른
하지만 두 영화에서 모두 말해주듯이, 내가 양치기소년 짓을 한다 해도 항상 사람들이 똑같이 달려나오진 않는다.
아무리 강한 자극도 몇 번쯤 반복되면 내성이 생기고 무뎌지듯이, 내가 관심을 받기 위해선 날이 갈수록 더한 일을 벌여야만 한다.
만화 눈부시도록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오늘 위를 벗으면 내일은 아래를 벗어야 하는데 할수 있겠냐'고
겨우겨우 친구에게 떼써서 인터뷰를 하고, 드디어 기사가 나오던 날 신문 헤드라인은 가족을 총으로 쏴죽인 미친놈의 이야기로 도배된다.
누가봐도 미친놈인 그 사람보다 더한 관심을 얻지 못해 화를 내는 순간, 시그네는 그 미친놈보다 더 미친놈이 되는 거다.
4. 공상
영화에는 현실 세계와 상상 속 세계가 경계 없이 섞여있다.
레디 큐. 하는 장면으로 공상에서 빠져나오기도 하지만 공상인 줄 알았던 세계가 그대로 진행되는 (알고보니 현실인)) 장면도 많다.
시그네가 뉴스에 나온 기념으로 열린 파티라던가, 모델 계약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서던 순간 같은 것들
어디부터 어디까지 진짜고 가짠지 구분이 가지 않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그네라는 사람의 거대한 자의식에 빠졌다 나온 기분이 든다.
5. 토마스
그여친에 그남친, 둘 다 지독한 관심종자. 자기보다 남이 관심받는 꼴은 보지도 못한다.
토마스의 전시회를 트집잡던 시그네와, 시그네의 모델계 진출을 비꼬던 토마스. 두 상황의 장소와 참석자가 모두 똑같은 건 둘이 그나물에 그밥이라고 말하는 거겠지
토마스가 시그네를 대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자신에 대한 관심 충족용이다. 각자의 삶이 있는 여자친구라기보단 자기가 그래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냅다 자랑할 배출구가 필요한 듯 보인다.
그는 의자 절도 아티스트이다. 이게 그냥 아무거나 아티스트를 붙이는 요즘 밈 때문이 아니고 진짜 의자를 훔쳐다가 예술이란 걸 한다.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술 훔친 이야기를 파티에서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그의 절도행위는 '관심에 목이 말라서 도덕과 윤리는 쌈싸먹었다'는 의미정도 되겠다.
표지에 떡하지 절도범, 토마스 하고 적혀 있는데도 부끄러워하긴 커녕 내가 잡지 표지에 실렸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급급하다. 아마 본인이 잡지에 나왔단 게 중요하지 뭐라고 적혀있는지는 관심가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마치 책을 읽지 않는데 작가는 되고 싶어하는 요즘 사람들처럼.
6. 모델 에이전시
모델 에이전시가 나올 때마다, 무척 불편했던 부분이 있다.
에이전시의 잡일 담당 노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로 물을 따르고, 손님을 안내해야한다.
상당히 깨어있는 듯한 멘트를 던지던 사장은
'컵을 제 위치에 놔주시면 일하기 더 편할 텐데요'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노라의 발언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그래도 좋은 일 하시는 분이고... 말하는데 문제될 거 없고...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진짜 별안간 깨달았다.
'그 에이전시는 너의 모델로서의 자질을 보고 계약하기로 결정한 거야, 아니면... 너의 겉모습을 보고 계약한 거야?'라던 시그네 친구의 말.
이 말을 곱씹어보면 에이전시 사장에게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장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준은, 그 각각이 가진 재능과 직업인으로서의 자질보다도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 그 자체다.
그 사장이 노라라는 인물과 그녀의 인간으로서 능력을 고려했다면 손님 안내나 물 떠오기 같은 일을 시키지 않았겠지?
단지 나의 깨어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핸디캡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고 전시하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7. 홀리스틱 센터
개인적으로 여기도 정말 제정신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더 쓸 의지가 없네
최후의 최후만 말하자면, 모든 사건을 다 경험한 시그네가 이곳에 돌아가서 남긴 말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센터 사람들의 반응, 다같이 즐겁게 동산을 거니는 마무리까지) 그녀가 그동안 가지고 싶었던 극적인 인생사를 결국 가지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가진 몸, 남자친구와의 생이별, 친구와의 단절 등 온갖 인생사를 겪으면서도 그녀가 행복하다. 내 삶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그게 다 그녀를 포장하기에 꽤나 괜찮은 소재이기에
영화 초반에서 말하던 나르시시즘은 뭐라도 해낸다는 말, 진짜였습니다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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