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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여란 - Road To Purple, 스페이스K전시 2022. 11. 27. 23:28
미술지식, 배경지식 하나 없이 관람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정리하는 포스트입니다.
개인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감상이 전부인 관계로 읽기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문제시 내가 또 실수를,,,
전시 포스터 보자마자 가고싶은데 가고싶은데 노래를 불렀지만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다보니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때마침 김포공항에 짐을 맡겨준 친구가 있어서 이건 운명이다 하고 바로 전 날 정한 행선지 스페이스K
합리성을 추구한 네모네모 빌딩숲 속에서 자신의 줏대를 지키는 2층짜리 원형 건물은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만 사진을 찍으면 어쩔 수 없이 뒤의 빌딩들이 찍힐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Usquam Nusquam 시리즈.
전시에서 의도한 관람 순서와 다르게 이쪽을 먼저 보고 말았다 (왜지.. 내가 그때 바닥 마킹을 잘못 본 건가)
Usquam Nusquam 은 라틴어로 '어디든, 어디도 아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 제목이 주는 의미가 뭘까, 조금 알쏭달쏭했는데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작가의 그림은 얼핏 보면 '이게... 뭔데?' 싶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 그림은 은행나무길이 되고, 어느 그림은 포말이 일어오르는 파도가 되고, 어느 그림은 석류를 가득 품은 화산으로도 보인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으로 자연을 표현했지만, 그 방식이 결코 뻔하진 않기에 누군가에게는 어디도 아닐 수 있고, 누군가에겐 어디든 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시리즈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구나 ... 하루를 꼬박 묵혀둔 다음에서야 깨달은 것
사실 맨 처음 생각한 이미지는 전주에 봤던 코스타스에 가까웠는데, 실제로 마주한 작품은 그와 정반대에 있었다.
둘 다 몸의 에너지를 그림에 액션으로 쏟아낸 것은 똑같지만, 마스타스는 평면, 정제된 이미지를 추구한다면 제여란 작가는 입체감, 그리고 날것의 분위기가 살아있다.
날것의 분위기는 정리되지 않은 드로잉에서 나오고, 입체감은 양감이 잔뜩 실린 물감에서 나온다.
이게 화장이었으면 '저기... 화장 뭉쳤어'로 끝나는 게 아닌 수준의 담뿍 실린 물감 말임
그림자마저 생길 지경의 물감 언덕은 정말 자연 어느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래도 자연은 쓰리디니까
스퀴즈라는 소재도 좀 신기해
오디오 가이드 듣다가 생각한 건데, 판화 물감을 고르게 펴바르는 (정리하는) 용도로 쓰이는 스퀴즈가 드로잉의 직접적인 주체가 된다는 게 인상깊다.
잔뜩 떠올린 물감은 퇴적을, 구축을 보여주고 스퀴즈로 펴바르는 행위는 침식을, 그리고 해체를 보여준다는 해설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하늘 아래 같은 립 색조는 있을 수 있어도 같은 생명체는 없다.
당장 유전자를 일백 퍼센트 공유하는 나와 쌍둥이만 봐도 지금은 제법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산다. (소프트웨어가 어느정도 똑같다는 건 인정함)
작가가 작품에서 우연함, 그러니까 정형화되지 않은 이미지를 그려낸 건 그런 자연의 표현법 중 하나라구 생각
특히 같은 페인트를 사용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제각기 다른 이미지를 그려내는 위 시리즈들은 세상에 절대 똑같은 것 없는 자연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작가의 초반 작품으로 넘어와서 되-ㅁ 시리즈
이전에 본 시리즈와 같이 놓고 생각하면, 오만가지 색상 대신 단일 색상, 입체감 대신 평면적 표현 등 정반대로 보이지만
비슷한 재료를 우연의 영역에 담아 다른 결과물로 뽑아냈다는 기본 골조는 같은 듯
그런 면에서 이 두개의 작품을 같은 자리에 놓은 게 너무 흥미로웠음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두개의 시리즈로 각각 그려낸 것 같았기 때문에... 시기상으로도 그게 맞기도 하다
신기한 게, 아무도 나에게 전시회 어떤 걸 어떤 순서로 가라고 알려준 적이 없는데 이전 전시회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이 그 다음 전시회에서 어느 정도 해답...이라기보단 힌트 정도로 작용한다.
바로 전에 이숙자 개인전 보면서 '이 작품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했었는데 Untitled 작품의 해설에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게 신기해서 하는 말이 맞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이 작품을 발견했을 때. ㅋㅋㅋ
한 가지 시리즈를 계속 마주하면서 어느정도 ... 예상 가능하다고 해야하나 작가의 작품에 익숙해졌을 때,
그때 별안간 벽 위에 얹혀져 있는 이 작품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렇게 염불을 외던 자극 그 자체
와 여기에 작품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 (그렇다고 아래 작품들이 사막같이 힘들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또 이게 재밌는 이유가, 평소 친하지만 전시회에 데려가기엔 좀 미안했던 친구 (왜냐면 우리는 짙은 빠순인연으로 만났고 그 친구는 굉장한 S적 인간임) 와 함께 갔는데, 그 친구에게 이 작품이 여기 있다고 보여주니까 또 다른 해석을 줬다.
작품 왼쪽으론 난색, 오른쪽으론 한색의 작품들이 보여서 빨강과 파랑 사이 보라가 있는 거냐고.
와... '붉은 색과 푸른 색이 결합 ...' 팜플렛에서 봤던 이 말도 생각나고.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걸 발견한 친구 덕분에 그 순간 너무 재밌어졌다. 사실 전시는 무조건 혼자 본다 쪽이었는데 이 친구 덕분에 누군가와 함께 보는 것의 즐거움을 알았어... 너무 고맙다
왜 저 작품을 가장 끝자락에 놓았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라구.
수많은 흑과 색을 지나 결국 최종의 Purple로 오기까지, 그 긴 전시의 궤적이 Road To Purple이었다.
이제 나에게의 Purple이 익숙함 속 의외성에 있었다면, 친구의 Purple은 모든 것의 중앙과 조화에 있었던 거지전시가 끝나고 나왔는데 하늘이 아까 본 그 순간 (빨강과 파랑의 사이 보랏빛)과 똑같다고 말해줘서 또 감동
내가 보지 못한 걸 보는 사람은 질투도 좀 나지만 그만큼 고맙기도 하다'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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