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 내가 벌레가 된다는 건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물론 삶은 제법… 충처럼 보내고 있긴 함) 그래서 거대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묘사하는 첫머리를 읽으면서도 ‘혹시 이게 어떤 은유라도 되는데 내가 못 알아채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설마 반 의심 반으로 책장을 넘길수록 확실해지는 벌레로의 변태.
주인공이 별안간 벌레가 된 것처럼 다시 별안간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결국 그는 원 신분을 되찾지 못한 채 벌레로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직장 상사가 찾아오고, 가족이 놀라서 난리가 나고, 사과도 얻어맞고 사람들 앞에서 어그로도 끌었다. 분명 한때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자 동생의 꿈을 응원하는 좋은 오빠, 부모님을 부양하는 착한 아들이었는데 그의 외형이 바뀌는 순간 그는 모든 걸 다 잃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족들을 욕할 수만은 없지… 꽤나 오랜 시간 가족들은 잘못된 오빠를 책임지려 노력한다. 여동생은 오빠(였던 것)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골라주고, 방법은 좀 다를 지 몰라도 엄마와 함께 방구조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수발, 그리고 그에 발맞춰 다가오는 재정난은 처음의 열정과 성의를 무너뜨리기 충분하다. 당장 내 삶이 고달퍼지는데 돌아올 지 모르는 오빠(였던 것)의 안위가 무슨 소용.
나를 인간으로 증명하는 것은 뭘까? 지금의 나는 용케도 잘 살아서 돈을 벌고 알아서 밥도 해먹으며 좀 자연인스럽긴 하지만 사람들 앞에 나설 만한 차림새로 나돌아다니고 있는데, 언제 인생이 삐끗할 지 모른다. 진짜 벌레는 안 되더라도,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하며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한… 가족들의 노동력만 축내는 존재가 되는 것까진 가능하니까. 소설 속에서야 껍데기까지 벌레가 되면서 인간과의 경계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었긴 하지만, 만약 내가 껍데기는 인간을 유지한 채로 벌레에 준하는 존재가 된다면 그때도 난 진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그 점이 궁금한 거지 물론 나도 다른 ‘벌레’ 가족들을 끝까지 이끌어 갈 자신은 없다 보니, 언젠가 속으로 ‘알아서 사라져줬으면’하고 바라고 있을 수도…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자기객관화와 염치일지도 모른다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