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인생영화로 뽑히는 영화, 더 나아가 그렇게 뽑았을 때 인간성에 의심이 가지 않는 영화.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멋진 영화는 뭘지 조금 궁금해졌다.
1. 유진의 스카이캐슬 영화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등장인물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제롬, 그러니까 유진을 뽑을 것이다.
주인공이자 또다른 제롬이기도 한 빈센트는 나와 똑같은 ‘자연적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간같지 않다. 물론 그가 우월한 능력을 가지게 된 데엔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이 작은 영웅을 사랑하게 된 것이지만 그 노력이라는 게 굉장히 함축돼 보여지기도 했고, 어느 시점, 그러니까 레벨업 한 빈센트이자 제롬이 된 순간부턴 허점 하나 보이지 않는 천재로만 보인다. 회사에 숨어든 부적격자를 찾기 위한 시험이 꽤나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 순간을 영리하게 빠져나간다. 그가 실수한 순간이 영화를 통틀어서 딱 한 번, 렌즈를 버려서 밤중에 근시 온 일밖에 없었다는 건 (심지어 이땐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보여부는 동시에 나에겐 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 같은 걸 느끼게 한다,
반면 10점 만점에 9.3점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유진은 꽤나 인간적이다. 이 인간적이라는 말이 뜻하는 게 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긴 한데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가진 게 우월한 몸뚱인데 사고를 당해 쓰지도 못하고, 그 때문인진 몰라도 술에 의존적이며 성격도 더럽다. 은메달을 거머쥐었던 그 시절에 멈춘 채 그때의 영광만 곱씹으며 현실을 사는 거다. A급 조건을 갖고 태어났지만 불운한 사건에 의해 F급 인간이 된 유진에게서 원래 스스로가 A급인줄 알았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F급에 불과했단 걸 알게 된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걸수도 있다.
유진이 빈센트보다 더 빈센트의 성공을 바란 이유, 말미에 그가 직접 말하듯이 ‘you rent me dream’ 제롬 모로우라는 사회적 인물의 성공을 곧 유진 본인의 성공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자녀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여기는 이시대의 부모님처럼. 그러니까 유진은 대*동 사모님 빈센트는 그 자식 정도 (이 이야기를 같이 영화보던 친구에게 했더니 왜 그를 스카이캐슬에 집어넣냐고 했다) 그런데 그런 점이 굉장히 인간다웠고 그래서 더 좋았음.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빈센트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너를 위해 내가 다 맞춰즐게. 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겠냐구
그래서 빈센트보다도 유진의 결말에 더 신경이 쓰이나보다. 영화를 다 보고 났을때, 뭔가 빈센트라는 존재에 대한 존경보다는 유진의 마무리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게 남았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마음으론 어느정도 이해가 가면서도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그런 …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토록 동일시해왔던 사회적 인물 제롬과 자신은 더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느껴서가 아닐까 싶다. 자기 민증을 들고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정말 너 맞는지 의심하고, 경찰 및 여자친구가 집에 찾아와 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나는 더이상 제롬이 아니라는 마음 반, 자신의 이름을 대신 입신양명시켜준 빈센트에 대한 고마움 반 (고맙지 않으면 미래 준비를 그렇게 착실하게 해놓았을리 없다)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을 선택한 거겠지. 결국 온전히 자기 힘으로 이뤄낸 은메달 하나만을 가지고.
빈센트가 자기 각질과 머리카락을 태워버리는 화로에 들어간 건 물론 그게 가장 죽기 쉬운 길인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존재는 빈센트의 감춰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에 그런 건 아닐까 싶다. 자신은 세상에 남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여러 의미로.
2. 빈센트와 신의 뜻 영화 맨 처음 성경구절이 지나간다. 사실 나는 시청환경 세팅을 좀 하느라 못 보고 넘어갔긴 했는데 친구가 알려줬다. 그 구절을 처음 보았을 땐 빈센트가 신의 뜻을 거역한 자로 보였었는데 (과학을 신으로, 빈센트를 인간으로 생각함) 마지막에 임박해서 빈센트가 동생과 수영대결을 하는 장면, 그러니까 “나는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기에 널 이길 수 있는 거다”라고 이야기한 순간 비로소 신은 신이고, 과학이 인간임을 깨달았다.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는 건 어디서 온 마음일까? 인생에 배수진을 치게 만든 건, 그가 우월한 유전자여서가 아니라, 부적격자였기 때문이겠지 그가 유전적으로 우수해서 뭐든 쉽게쉽게, 면접도 단번에 프리패스되는 사람이었다면 아둥바둥 힘쓰는 방법을 몰랐을 거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빈센트가 신의 뜻이었음을, 그리고 동시에 신이 나를 엉망진창 dna로 만들어낸 것은 나로 하여금 크고 작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일어서며,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하나님… 그 계획은 조금 쉽지 않네요)
빈센트가 결국 제롬의 이름을 빌려 로켓에 타는 건 그도 결국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결국 근본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느낌? 하지만 영화는 그의 성공이 부적격자 어린 아이의 마음에 작은 불꽃을 심어줬다는 이야기를 내보이면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 아이가 커서 또 유의미한 성과를 어떤 식으로든 내고, 또 그걸 안 어느 누군가가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목화씨 몰래 펜뚜껑에 훔쳐온 문익점 선생님같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지
3. 그외 아이린과의 러브스토리… 그러니까 이런, 바람에 날려가 버렸네요 하는 장면이나 빈센트에 대한 순애도 인상적이었고 로켓발사 하나만을 위한 총감독의 순애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순간까지 기다렸다는 점에서 로켓과 제롬은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듯) 너무졸려서 …ㅎ 더이상 못 쓰겠다. 잘 봤다. 주드로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