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 소마미술관

우모 2022. 10. 31. 22:22

 

 


미술지식, 배경지식 하나 없이 관람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정리하는 포스트입니다.
개인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감상이 전부인 관계로 읽기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문제시 내가 또 실수를,,,




그동안 전시회고 뭐고 집에 누워 정규직의 느긋한(나태한) 주말을 보내다가
이대로 있으면 내가 한참 쓰레기가 될 것 같다는 (아니 이미 된 것 같지만) 생각이 들어 퍼뜩 당장 갈만한 전시를 찾았다.
멏 개 후보 중에서 뒤뷔페전을 가기로 한 건 주말 아니면 가기 힘든 전시회라서.

소마미술관, 저번에 한번 와 본 곳이라 길 찾는 건 덜 헤맬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
아무튼 여차저차 티켓을 발권하고 전시회장으로 입장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뒤뷔페 작가의 대표작 우를루프 연작을 먼저 볼 수 있다.





해설에서 인상깊었던 문구
1. 조형과 건축을 위해 회화적인 공간을 줄어 감
2.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그 어떤 요소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펑행하고도 기발한 세계를 재창조
3. 새 연작을 작업하면서는 서체 디자인과 드로잉의 관계를 논하며 작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리즈 초반의 그림은 좀 투박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볼드한 그림선이랑 붓자국이 다 보이는 색칠 그런 것들이
3에서 말한 것처럼 작품마다 같은 문구를 다른 서체로 배치해 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신기했음.
그리고 2번 같은 경우는 이후에 본 작가의 초기 작품관이랑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초반엔 일상적인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걸 작품에 포착해 담았다고 한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그 행위가 360도 돌아버려서 당연하지 않게 보여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맑은 눈의 광인 그런 정도로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작품 해석에 있어서 제목을 굉장히 많이 의지하는 편인데
이 시리즈는 유의미한 제목 붙은 게 많이 없을 뿐더러 붙어있어도 알쏭달쏭해서 (대체 이 그림이 어떻게 동식물) 하나하나 탐색하기보단 전체적인 분위기만 느꼈다.
그런데 소재가 캔버스에 비닐? 내가 아는 그 비니루? (대충 놀라는짤)





아만의 가치라는 말. 다른 날 봤으면 오… 인상깊은 문구군 메모해야겠어 하고 넘어갔을 말인데
하필 온국민 마음을 심란하게 한 그 사건이 있던 다음 날 본 문구라 좀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더라고
폭력성과 광기에 가치가 있는 게 정말 맞냐…






직품 중에서 유일하게 보자마자 아 이게 뭘 그린거구나 짜르르 필이 온 ‘개’.
좀 귀여웠다 내 스타일






작가가 회화를 뛰어넘어 무대예술이나 엉화까지 엉역을 넓힌 게 신기했다
입체감이 보통 인간계의 수준이 아닌 작풍을 쓰리디의 영역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영화 일부를 상영해줘서 봤는데 확실히 내가 생각하던 일반적인 영화는 아니더라구





아무튼 영화를 작업할 때 전시회의 또다른 주인공 브리글레와 지속적인 교류를 했다고 한다.
국중박 과천에서 본 이건희 소장품전에서도 느낀거지만 예술가 사회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런 궁금함이 생겼다.
연기나 음악같은 다른 분야보다도 제작자의 줏대 쪼 정채성 그런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미술이라 생각하는데 (정말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이분들 과연 교류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다들 너무 자기세계가 확고해서 대화가 통하긴 할까? (??) 막 그런게 궁금해지는거임
누구는 주전자를 보고 감동받지만 누구는 아니고, 누구는 마우스를 그대로 그리는 게 아름다움이면 누구는 아예 해부하는 게 아름다움일텐데
미술이라는 대분류 속에서 자기 길을 개척해나간 이 아티스트들 사이의 교류 알고싶습니다






후기 그림은 조그만 종이에 먼저 드로잉을 하고 이후 그걸 큰 캔버스에 다시 제작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듯 하다


붓질의 부재.
우를루프 연작이 끝난 후 사용한 작업방식 중 하나가 본인이 밑그림을 그린 걸 프로젝터로 투영시켜서 어시가 그대로 따라그리게 했다는데 (일종의 트레인가)
이걸 과연 누구의 작품으로 봐야하는가 소소한 논쟁이 되었다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자신이 직접 붓질하지 않은 작품인데 작가가 될 수 있나? 뒤뷔페의 생각은 예스여요.
미술적 가치는 기술적인 데 오는 완성도보다도 작가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걸 확인시켜주는 퍼포먼스인듯

이렇게 하면 작가가 최종단계에서 캔버스를 칠할 때보다 드로잉에 담긴 펜의 특정 효과를 더욱 충실하게 표현한다고도 했다.
펜글씨 교본에서 미리 흐리게 인쇄된 글자 위를 따라 쓸때 주어진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따라하려 애쓰듯이
다른 사람이 투영기를 통해 그림을 따라그리는 과정에서 원작자도 생각하지 못한 디테일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원작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더 강조되어 나타나는 걸까?





빌리글레로 넘어온다. 요즘 드립으로 표현하면 벽보 유괴 아티스트




 

 

게시판에서 절도 (한 벽보)

이런 제목을 보고 감동받지 않는 순간이 오긴 할까 너무나도 3라차같고 좋은거다

 

 

 

 

 

이 작품을 보면서 벽보라는 매체가 가지는 특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고,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요란한 디자인을 갖는다.

동시에 시작은 같은 모양이었어도 사람들의 참여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이 두개의 특징은 벽보가 좋은 소재로 사용되게 해 준다.

노랑과 까망의 보색 벽보에, 스프레이로 잔뜩 낙서해놓은 벽보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이 다음에 나온 해설에도 비슷한 내용이 올라있어서, 내 해석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져서 좀 기뻤음 ㅎㅎ

 

 

 

 

 

나에게 은하는 타원형인데 작가에겐 은하수처럼 긴 모양이었다

종이를 겹치고 겹쳐서 깊이감을 준 게 인상적이었음

 

 

 

 

 

 

전시회를 보면서 좀 신기했던 점

위에도 썼다시피 전시를 보면서 벽보의 예술적 가치를 느끼고, 오... 이 완벽하게 상업적이고 완벽하게 급진적인 매체라니, 심지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것까지 하나의 예술이고나 했던 나인데

빌리글레의 전시 마지막 부분에 써있는 한마디를 보고선 깜짝 놀라서 초반으로 다시 돌아가서 해설을 읽었다.

그랬더니 작품이 좀 다르게 읽히더라고... 나는 벽보를 예술적 잠재력이 있는 시각디자인 매체로 봤다면 빌리글레에게 벽보는 '쓰레기'의 연장이었고, 그런 쓰레기들을 모아 예술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빌리글레가 가진 예술적 가치관이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좀 다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뒤뷔페가 말한 '야만의 가치'를 빌리글레 또한 보여주고자 했던 거구나 싶어진다.

 

 

 

 

 

 

 

 

전시관을 옮겨선 뒤뷔페의 초반 작품을 구경했는데, 이때싶 말하는 거지만 전시회 관람 흐름에 대해선 좀 아쉬움이 남는다.

전시회 맨 처음에는 작가 연혁밖에 없고,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작품을 하고자 하는지 설명하는 인트로는 2전시관에 들어가서야 나오니까 나처럼 사전지식 없는 사람은 1부동안 물음표 띄운 개구리 짤로 봐야하는거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디서 일했는지보다 내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소개해주는게 나란 사람의 작업물을 이해하기 더 편하지 않나요..

그리고 맨 처음을 가장 대표작이자 후반 작업물인 우를루프로 보여주니까 오히려 뒷부분(초기 작업물) 부분에선 좀 집중력이 떨어지고 임팩트가 없었음. 차라리 2 전시관을 먼저 보고 1전시관으로 안내하는 흐름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무엇보다 중간 해설중 한부분이 문장 어미 안 맞고 문장부호도 누락돼있어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신경쓰였음 진짜...

 

 

 

 

 

 

오랜만에 문화생활 재밌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