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자 개인전, 선갤러리
미술지식, 배경지식 하나 없이 관람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정리하는 포스트입니다.
개인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감상이 전부인 관계로 읽기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문제시 내가 또 실수를,,,
휴관일을 알아보지도 않고 냅다 일요일에 가려다가 전날에 급하게 현실(?)을 깨닫고 일정을 수정한 (...)
바로 그 전시회에 다녀왔다.
나는 전시 소개 읽을 때가 참 좋더라
이번 소개글에서 가장 유심히 읽은 부분은 작가의 독특한 채색 재료.
암채(岩彩)라는 재료가 사용도 어렵고 이후 관리도 어렵다더니 그 때문이라고 해야하나 덕분이라고 해야하나, 검색했더니 자연스레 이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 정도로 이 기법의 맥을 이어나가고 계신다.
재료의 특징이 원래 이런걸까?
그림을 실제로 보면 밤하늘 별(은하수 수준은 아니고 우리동네보단 적당히 공기좋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별 정도)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카메라로 찍어서는 잘 잡히지 않을 그런 사소한 빛남이라, 실제로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두성산. 작업기간이 2000, 2014-2016으로 되어 있다.
여러모로 궁금함이 생긴다. 처음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손을 못 댄 이유도 궁금하고,
그러다 다시 작업을 시작한 계기라던가, 몇년을 붙잡고 있던 작품을 마무리지을 때의 기분 같은 것들이.
한번 멈췄던 걸 다시 굴리는 일과,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쌓아온 행위를 멈추는 일에는 모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냐구
나였으면 일단 한번 멈추면 아...귀찮다 하면서 다시 시작 안 할 것 같고 (실제로 벌리기만 하고 마무리짓지 않은 일이 오천만개)
3년동안 작업하고 있으면 '이제 이정도면 되지 않나'하고 날림 마무리를 하던가 (실제로 그렇게 대충 마무리지은 회사일 오억개)
'뭔가... 뭔가 부족해보이지 않아? 이게 정말 끝인가??' 하면서 미적미적 미완의 상태를 이어갈 것 같아서 (실제로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는 아이디어 오조오억개)
이 거대한 작품을 시작하고, 이끌어나가고, 후련하게 완성했다 말할 수 있는 작가님의 결단과 의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좌 황맥98-1, 우 석보상절4
오른쪽과 왼쪽에 쓰인 소재는 흡사한데 표현 방식은 달라서 그게 좀 신기했음
위의 연장으로 채색기법 뿐 만 아니라 소재에서도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했다.
특히 중간 (추상이브, 1989)은 클림프가 생각나는데 거기에 전통 무늬와 문자를 넣어 한국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것 같은?
오른쪽 (작업) 의 경우 이것도 조금 시대는 늦춰졌지만 한국 온리라고 봐도 될 정도로 민족성 강한 그림
그런데 위의 대놓고 한국적인 그림보다 이 그림들이 가장 한국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제 비빔밥과 김치 대신 치킨과 만두가 케이-푸드 대표를 차지하듯이,
한국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한국적인 느낌, 그러니까 동양의 작은 나라가 가진 상서로움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음
또 이게 워낙 유명한 시리즈다보니 사전지식 없이 다니는 나도 '음~ 보리밭 그림'하고 미리 알고 간 거였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
내가 인터넷으로 봤던 게 이 그림이던가? 싶은 느낌.
'사진이 실물을 못 담아내세요'하는 플러팅 멘트를 치고 싶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그림과 해설을 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그림을 보아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배웠어요
그리고 재료 이름부터가 '돌岩'이 들어가니까 좀 투박하고 거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군우 작품이 내가 상상하는 암채 기법의 정석이었다)
청보리 들판은 정말 섬세하지만 힘있고 생동감이 넘쳐서 여러모로 재료에 대한 반전 인상을 준다. (앞으로는 책 좀 읽어야지 갭모에라고 쓰려다가 아...이건 좀 아닌데 싶어서 겨우 단어를 골라 대체했다)
특히 보리 알갱이들이 나로 하여금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을 오초에 한번씩 들게 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채색 재료를 두껍게 발라 양각 효과를 줘서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더라구 그게 너무 좋았다
작가는 어쩌다 보리밭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이 보리밭으로 인해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찾았으며 그 덕분에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지금까지도 활동을 계속하며 나같은 무지랭이들도 작품 하나 보겠다고 여기 전시회장까지 찾아오는데, 어떻게 그런 운명같은 소재를 만났는지 궁금해졌더랬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이 감상을 정리하다가, 과거 작가가 보리밭 소재에 대해 이야기한 게 있어서 같이 남겨놓음 (책으로도 남기셨다고)
기원1-수녀원
나는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하나의 여성이, 또는 여러 명의 여성이 모여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할 때 그만의 아우라가 있다고 믿는데 (그냥 전부라는 거 아님?)
이 작품은 그런 내 로망에 불을 지피는 작품이다.
오래 전 본 애니메이션 주인공도 생각나고 (시마코는 정말 수녀가 됐을까, 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같은)
그리고 이런 나만의 취향은 이브 시리즈를 보면서 작가가 생각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대해 궁금함을 느낀 이유가 된다.
2층에서 본 여성은 수녀이거나, 아니면 미사보를 쓰고 있는... '영적인'(성스러운이라는 단어를 쓰자니 좀 지나치게 성역화하는 것 같아서) 존재였는데 3층에서 본 여성은 파격적인 올 누드에 형형한 눈빛을 가졌기 때문이다. 단지 악녀와 성녀로 나누기에 3층의 여성들은 뇌쇄적이라기 보단... 나를 꿰뚫고 있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를 다 보고 1층으로 내려왔는데, 1층 소개에 간략하게 '이브'의 상징에 대해 말해줬고
위에서 본 인터뷰에도 이브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어서, 이를 다시 읽으며 작가의 여성에 대해 다시한번 제대로 생각해보게 됐다